<하남시 고골의 전경 >

본회에서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하남시 고골의 전경으로 백제문화연구회 전선영 이사가한산으로 비정되는 남한산성의 북문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곳은 삼국사기의 기록과 같이 북으로 한강, 동으로는 검단산, 남으로는 탄천변의 평야지대, 서로는 인천앞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곳은 서로는 금암산과 이성산, 남으로는 남한산, 동으로는 검단산으로 둘러쌓여있는 천혜의 요새로 고골안에는 5km나 되는 교산동토성과 이성산성, 중촌토성 등이 남아있다.

<교산동토성의 중성유적>

본회에서 백제시대의 왕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교산동토성은 외성과 중성 내성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궁궐지로 추정되는 교산동대형건물지의 북쪽을 막고 있는 중성은 거대한 토축으로 현재는 과수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최근 훼손되고 있다.

<추정왕궁지>

1992년 한종섭 부회장에 의해 발견되었고 온순제 박사에 의해 조사 연구되어 온 곳으로 교산동토성안에 장방형의 내성으로 둘러쌓여 있는 대형건물지로 북쪽부분은 도로 및 건물지로 이미 훼손되어 버려 ∩자형태로 남아있다. 이곳의 동쪽은 고려,조선시대의 기와가 많이 나오고 있고 초석이 움직여진 것으로 보아 이시대에 재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 보이는 서쪽의 초석들은 2.8m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삼국시대에 사용되었다고 하는 고한척(古韓尺)의 척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이 초석들은 움직인 흔적이 없으며 시굴 당시 두 개의 판축층에서 백제시대의 흑회색연질토기와 회백색타날문토기 및 숯이 나왔다. 더구나 발굴 결과 7-9단에 걸쳐 초석이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500여년에 걸친 한성백제의 기난긴 세월에 여러차례에 걸쳐 중축이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더구나 이곳에서 나온 숯은 궁궐이 불탔었다는 삼국시대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천왕사의 목탑심초석>

본회에서 조사해온 유적으로 천왕사라는 명문기와를 수습하였고 더구나 목탑의 심초석이 드러남으로써 주목을 받은 사찰이다. 발굴결과 이목탑심초석아래 또다른 목탑의 심초석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은 한성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지어진 목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왕사 최대철불대좌>

현재 광주철불이라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잇는 우리나라 최대의 철불은 이곳 천왕사의 것임이 오순제 박사에 의해 최초로 밝혀졌는데 김종규 하남시문화원 이사에 의해 그 대형철불의 좌대가 이곳 민가에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팔갈건물지>

현재 한성별궁으로 비정되고 있는 이성산성안에는 9각, 8각, 12각 및 장방형건물지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 고이왕이 대단을 설치하고 천지신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9각은 천단, 8각은 지단, 12각은 신지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북바위(별자리바위)>


한종섭 부회장에 의해 발견된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등위에는 삼태성의 별자리가 새겨 있으며 발굴결과 그 아래에는 석곽묘가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견훤의 동성이였던 전주의 거북바위에서도 같은 현상을 가지고 있다. 이 방위의 아래에는 두 개의 별자리 바위가 더 있다.

<용바위>

한종섭 부회장에 의해 발견된 인공조형물로이성산성의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그 아래에는 고분, 정방형건물지, 12각건물지로 이어지는 신성한 라인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아스카에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조조형물들의 원초적 모습을 잘드러내고 있다.

<세미골옹로 >


옹로란 한종섭부회장에 의해 발견되고 윤명철 교수에 의해 정리된 방어체제로 세미골, 덜미재, 홍두깨바람재 등의 고대의 교통로에 분포되어있다. 특히 남한산성 북문의 동쪽에서 객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잡은 홍두깨바람재의 오로는 여러형태가 줄줄이 이어져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남한산성 행궁터에서 3-4세기에 해당하는 백제시대의 토기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근초고왕이 한산인 남한산성으로 옮겨 간 이후 쳐들어올 고구려군에 대비하여 만든 옹로 유적들이였음을 오순제 박사가 밝혔다.

<신평리제방유적>

백제의 한성시기에는 한강이 홍수로 범람하여 수해를 입은 기록이 나오고 있으며 제방을 만들고 수리한 기록 또한 나오고 있다. 더구나 개로왕은 동똑의 숭산에서 서쪽의 사성에 이루기까지 제방을 쌓았다고 하는데 현재 미사리 부근에 있는 제방도로의 안쪽에는 검단산으로부터 구산에 이르기까지 길게 제방유적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본회에서 밝혀냈다. 그중에서도 신평리에 남아있는 제방유적은 매우 거대하여 마을자체가 그위에 올라가 있는 형상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판단하기 힘든 지경이다.

<도미나루>

덕소쪽에서 바로 본 도미나루와 검단산의 정경이다. 현재 팔당대교가 놓여진 곳은 두미진으로 불리워지고 나루터로 개로왕 당시 도미부인이 떠난 나루터였음을 본회에서 밝혀냈다. 이곳은 왕궁이 있었던 하남시 고골에서 가장가까운 나루터로 그 바로 북쪽에 자리장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