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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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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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4. 금성분의 종합적인 조사 내용

지금까지 하남시와 강동구에 산재되어 있는 금성분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알게 된 내용은 아래와 같으며 이러한 것이 기본적인 틀이 되어 유적을 찾아낼수 있었다.

1) 강동구에서 본 금성분.
하남시 전역을 10여년 전부터 조사를 해온 결과 작은 규모의 금성분이 여러기 발견되어 주시해 왔었던 곳이다.
발굴에 의하여 밝혀진 것은 이성산성 8각 금성분이며 한성 지역에 금성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예측하게 되었다.[「삼국시대 다각형(8각, 9각, 12각 건물과 전방후원분 발생 근원에 대한 시론(試論)」, 『백제 역사문화 자료집』 창간호. 2000년]

2) 인위적으로 조성한 표면
표면을 조사한 결과 인근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돌출과 계곡처럼 굴곡진 부분이 많으나 금성분의 표면은 평탄하고 원형을 이루고 있기에 인위적으로 산전체의 표면을 조성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산 전체의 표면 토질조사에서도 자연적이지 않고 인위적으로 삭토 보축 등으로 토질이 폭넓게 교란되어 있다.

3) 일정한 비율의 규격
금성분의 보편적인 비율이 원분의 직경과 꼬리의 폭과 전체 길이의 비율에서 1 : 1.2 : 2 로서 일본의 인덕왕능, 응신왕능과 비율에서 비슷한 규모로 조성된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곳 금성분은 일본 금성분의 원류에 해당함으로 그 모양이 보다 사실적이며 일본의 간소화된 형태와 모양에서 다양하며 차이점이 있다.

4) 능골 마을에서 금성분에 묘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강동구 능골 1호분에서 형태와 마을 제사의식 등이 남아 있는 금성분의 묘제가 발견됨으로서 확증을 갖게 되었고 또한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야산을 군사 시설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들 야산은 이성산성과 구산토성으로 연결되어 군사적으로 벌판을 지키는 중요한 산들임에도 군사시설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능곡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곳으로 제사 지내는 날짜가 7월1일 또는 그 다음 날이며 저녁 해질 무렵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여 밤에 지내는 당제로서 이러한 제사는 당제보다 죽은 사람에 대한 제사의식이며 북쪽에서 남쪽 봉분을 향하여 절을 하는 위치에서도 묘제사임을 알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5) 고도화 된 천문학에서 발생한 묘제.
백제문화를 전해준 시기에 조성한 묘제로서 일본에 금성분이 성행 하였다는 것은 백제에서 건너간 묘제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금성분의 묘제는 천문에서 발생한 8각이 포함된 고도화된 사상을 바탕으로 기하학적인 묘제가 조성된 것으로 백제에서 역박사(曆博士)를 왜국에 파견했던 기록에서 백제의 선진적인 천문학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왜국의 보다 깊은 천문학은 백제와의 교류에서 전해진 것으로 금성분이 왜국 현지에서 갑자기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은 고대 천문학에서 발생한 묘제이기 때문이다. 천문을 전해준 백제에서 이미 시행되었던 금성분 묘제이기에 일본에서 천문학을 받아들이면서 함께 파생된 묘제로 보여진다.

또한 금성분이 신라나 고구려 지역에서 뚜렷한 거대분이 없다는 점에서도 성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6) 강동구와 하남시 사이의 거대 고분은 일본의 사카이(堺) 소재의 거대 고분과 동일한 지형 구조이다.
위치적으로 일본의 오사카(大板) “사카이”에 분포되어 있는 금성분 고분군과 유사한 지형이며 왕도와의 일정한 거리의 평지 좌우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 지형과 동일하다.
백제문화를 이어받은 시대에 발생한 일본의 금성분이기에 백제에도 이보다 큰 금성분이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7) 천한수(天漢水) 개념에서 하천변에 조성하였다.
민둥산 고분은 환호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물을 끌어들이기에 알맞은 위치로서 일본의 환호 시설과 동일한 고분을 조성 할수 있는 입지이다. 현재 금성분의 고분군이 동쪽은 망월천, 서쪽은 고덕천 사이에 조성되어 있어 천한수(天漢水)를 유영하는 금성을 상징하는 주위에 물을 채우는 일본의 주구(周溝) 시설이 있는 전방후원분과 같다.

이곳 황산, 민둥산 금성분에는 몸체와 꼬리에 지느러미 같은 돌기가 있었던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 초기 금성분의 특성과 환호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9) 고분 조성의 땅이름이 남아 있다.
금성분이 조성된 땅이름이 능골, 소능골, 황산, 민둥산으로 능이 없음에도 능골이라는 땅이름이 전해지고 있으며, 황산을 ‘거칠뫼’라 부르는 것은 금성분의 형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산의 표면 흙을 걷어내어 풍화 암반이 돌출된 부분이 많아 표면이 거친 형태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보여진다. 또한 ‘민둥산’이라는 산 이름도 나무를 오랫동안 심지 않은 고분의 지명과 둥근 모양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10) 8각 조성의 각도가 동일하다
일본의 흠명천황(欽明天皇) 8각분과 이성산성 8각분과 동일한 각도로 조성되었고 1966년도 항공사진과 지금의 현황에서도 황산과 민둥산 금성분도 8각의 형태가 일부 남아있고 조성각도 역시 동일한 구조이다. 즉 8각 금성분 축조하는 방법이 8각의 모서리를 기준으로 상하 좌우로 배치하여 축조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11) 동양 최대의 목탑을 조성한 백제의 국력

금성분과 근접한 시대에 조성한 부처님의 무덤과 같은 목탑(木塔) 중에 규모가 동양 최대의 큰 규모(한변이 27m)였던 목탑이 하남시 동사지(桐寺址)에서 발견됨으로서 이에 버금가는 백제 묘제의 크기를 가늠할수 있다.

백제의 토목 공사를 알수 있는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을 쌓은 석재의 수급이 한강 건너에서 생산되는 화강암을 운반하여 사용할 만큼 엄청난 국력과 목조 단일 건물지로서는 최대 규모의 하남시 교산동 왕궁지 발굴에서 기대했던 국력을 알수 있고 초기 때부터 일본과 중국으로 진출한 강대한 국가임을 알수 있었다.

또한 서해안에서 들어 올수 있는 서울시 신림동 난곡에는 암벽을 깍아서 성(城)을 축조한 석벽성(石壁城)의 길이만도 2.3km에 달하는 거대한 장성(長城)이 남아있다. 위와 같이 여러 면으로 나타나는 현상에서 황산과 민둥산 같은 거대한 고분군들을 조성 할수 있는 국력을 갖고 있었으며 당나라가 백제를 견제 하려고 하였던 것도 그들이 국제적으로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며 고구려 광개토대왕때에 북중국 일대를 차지하면서도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인 백제를 멸망시키지 못한 것만 보아도 백제의 강성한 국력을 알수 있다.

장수왕때 백제의 국력을 탕진하도록 한 후에 한성지역이 함락되었다는 기록과 일치함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