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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이성산성의 다각형 건물은 하늘에서 제일 밝은 해, 달, 금성 등의 일월성신의 신전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고대 호국적인 상징으로 이용된 8각은 8각 우물, 8각 탑, 8각 신전, 8각 묘제까지 적용된 것을 알수 있다.

위의 8각 조성물에서 이해가 어려운 것은 우물이지만 고대도시가 신앙지였던 우물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으로 초기 국가는 우물이 기본이 된 것을 알수 있다. 우물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으로 이러한 것을 입증하는 것은 우물의 형태로 조성한 첨성대가 경주의 도시 중앙에 있다.
고대의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 “韓”자도 우물과 울타리가 초기 국가의 기본이라는 뜻매김의 글자이다.

호국을 상징하는 유적에 금성을 의미하는 8각으로 조성한 것은 금성이 항상 태양 주위를 떠나지 않고 보호하기에 금성을 호국의 별로 생각하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금성을 태백성(太白星)으로 관측한 기록이 여러곳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마야 문명에서는 금성의 달력을 사용할 만큼 적용도와 비중이 높은 금성 문화가 발달하였다.

금성과 관련된 사상은 그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8각과 관련된 예로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알려지고 있는 나정의 건물지가 8각으로 되어 금성과 관련된 사상의 기원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신라 21대 소지마립간 9년(487년) 2월에 신궁(神宮)을 내을(奈乙:경주 나정(蘿井))에 설치하였는데, 내을은 시조가 처음 탄생한 곳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위 나정의 신궁에서 8각으로 조성된 건물지가 발굴되면서 이성산성의 8각 금성 신전과 같이 나정에도 8각 금성 신전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최근 고구려의 도성 이였던 환도 산성의 궁궐지에서도 8각 건물이 나타나고 있다. 신궁 이외에 8각과 관련된 탑은 신라 망덕사지 목탑의 심초석이 8각으로 되어 있고 고구려 목탑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8각 목탑이 있다.

그 이외 8각 우물은 황룡사와 분황사의 우물이 8각으로 되어 있으며 조사를 한다면 보다 많은 부분에 적용이 되어 왔던 것이 밝혀지고 있다. 고대 금성과 관련 문화의 발달은 심오한 것으로 일본의 현지 조사에서도 8각의 금성을 새벽별과 저녁별로 나누어 2개를 조성한 신전이 많으며 이성산성에도 2개의 9각지와 8각 신전이 있었던 것으로 낮의 태양과 밤의 태양으로 구분한 것도 확인이 되고 있다.

위의 내용 중에서 무덤으로서 하늘과 관련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별자리 성혈이 있는 고인돌과 8각 금성분 그다음에 부처님 무덤의 일종인 8각 목탑으로 이어진 것을 알수 있다.


< 사진1 > 서울 강동구 암사동 고분

< 사진2 > 하남시 풍산동 민둥산 고분

< 사진3 > 꼬리가 물고기 모양으로 수직으로 세워진 전남 광주시 월계동의 금성분의 모얌

이성산성에서 8각이 조성된 금성분이 발굴되었고(『위례성 백제사2』262쪽) 이번 조사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인 민둥산 고분과 황산 고분을 66년의 항공사진으로 검토한 결과 8각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일본에서 전방후원분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 지고 있지만 뜻이 단순하게 외형에 있으며 명칭이 외형과도 맞지 않고 원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에 본고에서는 금성과 관련이 있기에 금성분(金星墳)이라는 명칭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발생 근원이 금성과 관련되어 있어 금성분으로 설명하면 보다 쉽게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다.

2) 금성의 운행과 꼬리
둥근 부분이 8각으로 조성되어 금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삼각형 모양으로 달려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여 조성한 것일까 의문시 되어 왔으나 이는 그 주위에 물을 채운 주구(周溝) 시설이 발견됨으로서 물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금성은 왜 물과 관련이 있을까 이는 천한수(天漢水) 개념에서 하늘에도 물이 있어 별들이 운행하는 것으로 고대인들은 믿어 왔던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도 하늘에 천한수가 있어 비가 내린다고 생각을 해왔다.
또한 금성의 운행을 살펴보면 5가지 괘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 회전하기도 하여 마치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과 같은 운행을 함으로 고대인들은 분명히 꼬리가 달렸다고 생각하여 금성에 자연스럽게 꼬리가 달려 있어야 만이 살아있는 금성으로 생각을 하여 꼬리와 함께 물을 채우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연상한다면 꼬리가 몸체와 함께 수직으로 붙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며 이를 입증하는 유적으로는 꼬리가 수 직으로 조성된 금성분은 전남 광주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석실이 있 는 장고형 고분의 꼬리가 앞편의 사진과 같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또한 약 30도 정도 경사진 꼬리가 강동구 명일동 금성분에서도 발견되고 있기에 금성에 물고기처럼 꼬리를 붙였다는 것이 입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형 고분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때는 보다 조성하기 쉬운 형태인 꼬리가 수평인 금성분을 조성하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앞으로 많은 조사가 이루워 진다면 금성분이 초기부터 여러 종류로 발달을 거처 보다 정형화 되어 가는 과정이 백제의 문화에서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고 또한 대형화 된 것은 백제의 국력을 알수 있는 절정기를 이룬 단계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으로 금성분이 건너갈 시기에는 보다 정형화 된 단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묘제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