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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1. 백제 한성시대와 일본 고분시대의 전방후원분 고찰.

어떤 과제를 연구 할 때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만이 밝힐수 있는 목표가 정해지는 것으로 먼저 전방후원분에 대한 전반적인 것에 대해 알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명칭의 문제
이성산성의 다각형 건물지인 8각, 9각, 12각 건물지를 규명하기 위해 일본지역 유적을 조사하던 중에 전방후원분의 후원분 쪽의 8각으로 된 고분이 10여기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후원이라는 명칭에 합리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8각을 왜 조성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과 외형에 대한 명칭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내부는 백제의 유물, 외형은 왜(倭)의 문화
일본의 전방후원분 내부의 부장품이 백제와 관련된 유물이 많다는 점에서 해석상의 문제가 되는 것은 내부는 백제의 것이고 외형은 일본의 묘제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해가 어려운 점이 나타나고 있다.

3) 전방후원분이 조성된 시기의 백제와 왜국

일본의 전방후원분 발생 시기가 4세기 중엽부터 7세기 말부터라는 학설로서 이 시기는 백제와 교류가 제일 많았고 왜(倭)국의 야마토 정권이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였다.
많은 백제인들이 왜국으로 진출할 시기로서 지금까지 고고학적인 성과로 볼때 백제와 문화를 달리하는 묘제가 발생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4) 묘제의 특수성
전방후원분은 그 모양이 복잡한 기하학적인 형태로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묘제가 아니며 근원적으로 천문학이 축척 응용되고 성숙된 사상이 아니고는 발생할수 없는 묘제이다.

5) 형성 기간과 적용 범위

무덤은 보수성이 강하여 전방후원의 형태를 적용하기까지 공감대가 형성 되려면 상당한 기간과 시행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묘제이다.
또한 묘제 이외의 다른 면으로도 오랫동안 폭넓게 적용되어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 보수성이 강한 묘제에까지 적용됨으로 그 과정과 기간이 짧은 시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측할수 있다.

6) 한성 백제 지역의 전방후원분
하남시 산곡동 동수막의 토성 성벽에 작은 전방후원분이 10년전에 이미 발견되었고 이성산성에서 원분이 8각으로 된 고분이 발굴되어 한성시대 이러한 묘제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감지할수 있었다.

7) 일본에는 다양한 형식이 없다.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정형화되어 초기의 다양화된 형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입이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2. 하늘과 관련된 고대 묘제

묘제를 알고자 할 때는 고대인들은 죽은 후에 어떤 과정으로 변화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죽음에 대한 고대 철학을 알고 있어야 묘제의 구성을 밝힐수 있다. 고대인들도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왔을 것이다. 자연을 숭배하였던 사상에서 고분과 죽음을 어떤 생각으로 연결지어 왔었던가를 알지 않으면 묘제를 구성한 근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간단하게 보면 묘제는 죽은 자의 집에 해당된다.

집은 신분과 품격에 알맞게 구성되어야 안정된 집이 될수 있으며 무덤은 죽은 후에 들어가는 집이기에 후세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사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수 있는 무덤으로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으로서 고인돌에 별자리가 새겨진 성혈을 쉽게 발견 할수가 있다. 고인돌의 별자리 성혈은 죽은 자와 별과 관련있는 것으로 사람이 죽게 되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으로 지금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이 눈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로 되돌아 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고대인들이 사람이 죽으면 목격을 할수 있는 것은 형체가 산화되어 한줌의 흙으로 변화하는 분해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분해로 인하여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되돌아 간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믿을수 밖에 없는 것은 사람을 태우면 연기나 열기 또는 수분이 하늘로 올라가기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인체 혼의 유기물(지금의 과학으로는 탄소) 고갱이가 하늘로 되돌아가서 별이 된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알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도 강이 있고 도시가 있으며 지상의 구조와 동일하게 임금과 신하가 있으며 오방신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지상에 살다가 죽으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하늘에도 지상과 같은 삶의 터전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고대도시는 하늘의 별자리와 같이 배치한 것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것을 입증하는 예로서 지금까지 5곳의 고대 왕도를 찾아내고 그 옆에 흐르는 강의 명칭을 살펴보면

백제초기 십제국 의 하북 위례성의 “한천”(지금의 중랑천)
백제 한성 시대의 “한수”
마한 도읍지 안성의 “한천”
춘천맥국의 “한계”
강릉 예국의 “큰내” (지금의 사천)

마한의 왕도 동쪽은 한천이 흐르고 서쪽은 진위천이 있으며 진위천도 원래 이름은 한천이며 상류에는 미리내라는 우리말로 은하수를 나타내는 하천의 이름이 남아있다. 강릉의 큰내도 한천의 우리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큰내의 상류에는 미리재라는 고개 이름이 남아있어 위와 같은 양상을 띄고있다.

위의 고대 도읍지 모두는 불교가 들어 오기전의 왕도로 은하수와 관련된 “한(은하수:漢)”자를 강 이름으로 정하였던 것이 나타나고 있다. 만주 부여국의 도읍지 옆에 흐르는 송화강을 고대는 천한수(天漢水) 또는 천하(天河)로 불리어 졌었다는 점에서도 하늘과 땅을 동일하게 보았던 것이다.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의 나일강도 고대인들이 은하수의 강으로 생각을 하고 피라미드를 배치하였다는 연구에서(『오리온 미스터리』 181쪽 : 열림원 출판) 얼마나 하늘과 관련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다. 고대의 묘제는 하늘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고 이러한 뜻에서 전방후원분도 하늘의 별과 관련이 있는 묘제라는 것을 예상 할수 있다.

특히 후원분이 8각으로 조성된 전방후원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됨으로 8각이 금성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밝히면서 금성을 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 하였던가를 알게되면 전방후원분의 성격을 규명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묘제에 적용된 별자리

(1)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위의 별자리
(2) 오리온 별자리와 같이 피라미드 배치(오리온 미스터리: 로버트 바우벌 · 아드리안 길버트 지음)
(3) 고구려 고분 벽화의 북두칠성과 현대의 망자 위의 칠성판


3. 전방후원분은 금성과 관련된 금성분(金星墳)이다

1) 8각과 금성
지금까지 외형에서 일본은 “전방후원분” 우리는 “장고형 고분”이라 하지만 이 또한 알맞은 표현의 명칭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방후원분이라는 일본의 학설이 맞지 않는 것은 전방이 방형이 아니고 물고기의 꼬리와 같고 원분도 8각형으로 조성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고형 고분이라고 하지만 한 면이 원형 또는 8각으로 장고형이 아니며 외형도 여러가지 형태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이러한 묘제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만이 올바른 명칭과 이해를 쉽게 하게 된다.

실제 한강권을 조사해본 결과 여러 곳에서 금성분이 발견되고 있지만 정식 발굴에서 발견된 것은 백제왕도의 제사처인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원분이 8각으로 되어 있는 금성분이 발굴됨으로서(『위례성 백제사 2』 261쪽) 한성시대 금성분의 묘제가 있었다는 것이 실증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백제 왕도의 제사처인 이성산성에서 8각(금성), 9각(태양), 12각(달)의 건물 배치 구조가 하늘에서 제일 밝은 천체의 신전 건물 배치임을 2000년도에 저서로 발표를 하였다.(『백제 역사 자료집』창간호 2000년 백제문화 연구회 발행)
이러한 신전 배치는 마야 문명에서도 동일하며(『별을 향한 길』 231쪽 앤서니 애브니 지음 영림 카디널)

태양을 고대인들은 가장 크다는 뜻의 숫자 9로 표현 한 것으로 왕은 9를 상징하고 제후는 7, 대부는 5, 평민은 3을 상징한 중국의 제도와 왕이 사는 곳을 구중궁궐로 9를 표현한 것과 같다.
12각은 일년이 12개월로서 달의 한주기를 표현하였고 8각은 금성의 한주기가 8년이며 항상 태양을 따라 다니는 특성에서 나라(고대어 태양)를 호위하는 별로 금성을 8각으로 표현하였다
.
이성산성의 신전 배치에서도 태양의 신전 9각 옆에 금성의 8각을 배치한 것은 항상 태양 주위를 떠나지 않는 금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전배치에서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