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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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맥국 논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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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고분 **
  백제 금성분 논문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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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왕도 유적 사진자료


 

<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 목 차 -

1. 백제 한성시대와 일본 고분시대의 전방후원분 고찰
2. 하늘과 관련된 고대 묘제
3. 전방후원분은 금성과 관련된 금성분이다.
4. 금성분의 종합적인 조사 내용
5. 암사동 금성분의 성격과 유물 유적의 학술조사
6. 암사동 유적의 현황 연구
7. 백제와 금성분
8. 강동구와 하남시 소재의 금성분 현황
9. 백제 한성지역의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과 고분군
<맺 음 말>

- 열 림 글 -
본 논문은 백제 한성시대(기원전 18년~서기475년) 왕도 주위의 현장 학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적을 연구한 글이며 그 중에서 한일 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전방후원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의하여 맺어진 결정체입니다. 1992년도 백제왕도의 거대한 고대도시를 하남시에서 찾아내고 연구 조사를 하면서 그 동안 풀지 못한 것은 일본의 전방후원분 묘제와의 관계를 규명하지 못한 것이 큰 과제가 되어 왔다.

그 동안 동양의 역사 관계가 급속도로 변화되어 역사 문제를 안이 하게 단순 학문으로만 대처해서는 안되는 시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 표면화 되고 있으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 대한 대응은 미미한 수준으로서 보다 치밀하게 접근을 하지 못하였고 오랜 식민사관을 탈피할수 있는 거대한 백제왕도의 유적이 발굴되어도 없었던 것처럼 은폐하여 왔던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1992년 백제 500년 왕도를 하남시에서 찾아낸 이후 목조 단일 건물지로서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교산동 왕궁 건물지가 발굴되면서 한성 백제시대의 거대한 도시 규모가 밝혀졌던 것이다.
또한 천왕사지에서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목탑지가 상하로 겹쳐서 2기나 발굴되어 한성 백제시대 왕도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한가를 알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역사 연구를 심층적으로 하게 되었다.

한강권 백제유적 분포에서 의문이 있었던 것은 하남시와 송파구 사이의 강동구 지역에는 백제와 관련된 뚜렷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늘 이상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 동안 강동구 신동우 구청장님과 어윤경 문화원장님의 적극적인 관심에서 3년전부터 조사를 해 왔으며 최근에는 일본의 학명으로 전방후원분이라는 거대한 고분군을 찾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적을 찾을수 있었던 것은 하남시 백제왕도 주변에서 10여년전부터 전방후원분이 몇기가 발견되어 이에 대한 조사, 연구를 해왔고 이 지역을 항상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었다.

전방후원분의 구조는 앞쪽이 물고기 꼬리 형태이며 뒤쪽은 원분이 결합된 열쇠구멍 모양의 기하학적인 모양의 고분으로서 일본에서는 보고가 된 것만도 2600기가 될 만큼 숫자가 많아 지금까지 일본 고유의 묘제로 알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묘제이다.

일본에서는 4세기 중엽부터 7세기 말까지를 전방후원분 묘제를 사용한 고분시대의 편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묘제에 대하여 그 성격이나 발생 과정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관계로 고분의 명칭에서부터 의견의 차이가 많다. 국내에서는 장고형고분이라 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영산강 유역에서 몇기가 발견되어 한일간 학자들의 논란이 되어 고대 일본이 삼국초기에 한반도 남부 지역을 다스렸던 임나일본부의 증거라고 문제 제기를 해왔던 고분이다.

지금까지 중국이나 한국보다 일본 고유문화의 묘제로 보았던 것이며 또한 일본인들이 긍지를 느끼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제일 큰 3대 능묘라면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밋과 중국의 진시황 능과 일본의 사카이시에 있는 다이센(大仙) 고분(인덕천왕능)이며 그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이센 고분은 길이가 486m에 해당되는 전방후원분의 묘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방후원분 묘제에서 출토되는 부장품이 백제와 관련된 유물이 많다는 점에서 그 동안 많은 의문을 자아내었던 것이다. 백제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전방후원분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일본에서 발생한 일본의 고유 묘제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전방후원분에 대한 근원을 우선적으로 밝혀야 할 것은 이러한 묘제가 왜 조성 되었으며 조성된 근거와 과정을 알고 있어야 만이 유적을 찾을수 있고 이의 근원지를 밝힐수 있다.

근본적인 것을 알게되면 왜 이러한 묘제가 발생하였고 조성된 위치가 어떤 곳인가를 알게되어 시기와 경로를 추적할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오랫동안 하였다는 것은 어떤 당위성과 명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볼때 뚜렷한 축조 근거가 있었기에 전방후원분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본 논문은 사회단체가 굴착 조사한 것을 2일이 지난 후에 파괴된 고분에서 확인한 유물과 그 당시에 찍은 몇장의 사진을 수집하여 검토한 결과 밝혀진 내용으로서 체계적인 조사가 아니기에 부족한 면은 있으나 고분의 내용은 명확하게 입증 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