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춘천 맥국 논문 (01)
  춘천 맥국 논문 (02)
  춘천 맥국 논문 (03)
  춘천 맥국 논문 (04)
** 세계 최대의 고분 **
  백제 금성분 논문 (01)
  백제 금성분 논문 (02)
  백제 금성분 논문 (03)
  백제 금성분 논문 (04)
  백제 금성분 논문 (05)
  백제 금성분 논문 (06)
  백제 금성분 논문 (07)
  백제 금성분 논문 (08)
  백제 금성분 논문 (09)
  백제 금성분 논문 (10)
  백제 금성분 논문 (11)
  1회 안성 신문 자료 (1회 신문)
  2회 안성 신문 자료 (2회 신문)
  3회 안성 신문 자료 (3회 신문)
  4회 안성 신문 자료 (4회 신문)
  마한 원고 사진자료
  맥국과 백제 사진자료
  백제왕도 유적 사진자료


 
맥국(貊國) 왕도 유적 조사에 대하여

                                                    <사>백제 문화 연구회

                                                                        회 장 한종섭

3. 말갈은 우리 민족인 동이족의 갈래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말갈이라면 남북한 공히 우리 민족과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삼국사기』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말갈은 위치적으로 한반도 중심에서 삼국과 연관이 많은 국가로서 고구려와는 친밀한 동맹관계를 유지 하였으나 백제와 신라에게는 끈임 없이 도전을 시도 하였던 국가이다.

말갈의 역사가 외부에 많이 알려졌었다면 삼국과 같이 역사의 큰 맥으로 장식 되었을 것이다.
백제사에 나타나는 말갈은 맥국과 관련된 세력이라는 것이 기록에서 밝혀지며 삼국과 함께 장기간 존재한 말갈이 우리 민족임은 명백하다. 말갈은 대부분 산악지대와 하천의 생활에 익숙하며 사냥을 잘하는 추장이 이끄는 집단의 생활 방식에서 말갈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맥국의 계통은 사상에서 나온 명칭이며 말갈은 범칭의 성격에서 외부에서 이름 지어진 차이로서 종족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있으나 강원도 말갈의 연맹국은 맥국이다. 그러나 맥이나 말갈이 수렵을 잘하는 종족으로 모두 활을 잘 쏘고 활을 잘 만드는 기술이 있다는 공통성이 있다.
활사용에 능숙한 종족이라 하여 계열이 같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산악 지대 사냥 기술의 유사성에서 본다면 맥이나 말갈이 동이족 특유의 활사용과 제조의 기술이 있다.

『일본 서기』 웅략천황(雄略天皇) 20년(475년)의 기록에는 “박(?)의 대군이 와서 대성을 친지 7일 7야에 왕성이 함락이 되어 드디어 위례를 잃었다········.”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 시킬 때의 기록으로서 고구려를 “박”이라 하였고 『삼국지』위서 동이전 고구려 편에 “고구려의 별종이 소수(小水)의 유역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그 이름을 소수맥(小水貊)이라 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활이 생산되니 이른바 맥궁(貊弓)이 그것이다”

위의 기록에서 보면 고구려는 “맥”이 세운 국가로서 후대에도 맥이라 불렀던 것이며 “맥”을 “박”이라 칭하기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활을 잘 쏘는 것과 활을 잘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동이족(東夷族)의 맥궁(貊弓)은 고대의 사냥 기술에서 발달한 무기로 볼 수 있다.

강원도 맥국과 관련된 기록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은『삼국사기』유리이사금 19년(42년) “8월에 맥국의 거수(渠帥)가 금수(禽獸:날짐승과 들짐승)를 사냥하여 바쳤다” 단편적이지만 사냥에 능숙함을 알 수 있고 말갈도 사냥에 능숙하다는 기록으로는『위서』물길국(勿吉國) 편에 “활로 사냥을 잘하니 활의 길이는 3자요 화살의 길이는 1자 2치인데 돌로 화살촉을 만든다”

“해마다 7, 8월이면 독약을 제조하여 화살촉에 묻혀 두었다가 새나 짐승을 쏘는데 맞기만 하면 바로 죽는다.”

우리나라는 70%가 산악 지대이며 산맥이 말갈의 주분포 지역인 백두산과 흑룡강으로 연결되어 있어 사냥을 생업으로 활쏘기와 제조 기술이 발달 하였던 동이족임을 알 수 있다.
산악 민족인 춘천 맥국은 말갈의 주무대인 백두산과 북방산맥으로 지리적 연결이 되어 있고 생활 방법에서도 밀접하다.

고구려 보장왕 4년(645년)의 기록에는 말갈의 군사 15만명과 연합하여 당나라와 싸우는 기록 등 말갈은 고구려의 선봉이 되어 중국을 압박하기도 하였고 고구려와 연합관계가 많고 함께 발해를 세운 민족이다. 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만 지역적인 특성에서 실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관계로 베일에 가리워진 역사로 전락 되고 말았던 것이다.

1)맥국(貊國) 명칭에 대하여
고대의 사상에서 국가의 이름인 맥이라는 어원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어야 기본적인 국가관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춘천에 나타나는 고대의 지명과 찾아낸 5개의 왕도 유적에서 비교 하면서 가늠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맥(貊)이라 함은 춘천의 주변 땅이름과 비교를 해 보면 “아침” “새” “샘”과 관련된 것으로 맥은 우리 몸속에 뛰는 에너지의 힘을 맥박이라 하기도 하고 중요한 혈을 맥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는 오르내리는 힘의 근본 원류를 맥이라 하는 뜻이 있다.

샘도 솟아오르는 뜻이 포함된 샘물, 샘을 낸다 등이 맥과 같은 뜻의 유사성이 있다. 태양 숭배 사상에서 밝은 힘의 근원을 신성시 하였던 것이 국가의 명칭으로 정한 것이 많다. 지금까지 맥을 박으로 지칭한 일본서기에는 고구려를 박(?)으로 표현한 것과 고구려를 소수맥(小水貊)으로 기록한 점에서 “맥”의 어원을 “박”으로 밝은 기운으로 보기도 한다.

“맥”이라는 국가 명칭은 태양 숭배 사상에서 떠오르는 힘의 근원 즉 에너지를 의미 하는 것으로 유사한 표현은 “맥박” 이라는 어원과 대조가 된다. “맥”은 종족의 사상에서 생겨난 원류 명칭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나 말갈이라는 명칭은 외부에서 삶의 습성을 보고 이름 지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고대의 국가 이름은 하늘과 관련된 태양이나 별과 관련된 사상에서 이름 지어진 것이 많다.

최근에 졸본이라는 명칭이 금성(金星)이라는 뜻으로 키르기스탄을 방문한 소설가 김지하 씨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다. 금성은 유목민의 보호자라는 인식이 있으며 이는 종족의 사상에서 이름 지어진 명칭이다.

춘천지역에서 나타나는 땅이름과 비교를 한다면 발산, 아침, 샘 등은 우리나라 고대 왕도 유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새밝의 지명으로서 맥이라는 국가의 이름도 태양 숭배 사상에서 “밝은 기운”이 솟아나는 새밝이며 이는 조선(朝鮮)과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

고조선의 도읍지가 아사달이며 “아사”는 일본 말 아침을 표현하며 달은 음달 양달의 의미로 터를 말하며 춘천의 땅이름에 “아침못”과 “샘밭” “발산” 등이 있으며 이러한 새밝을 의미 하는 국가는 동이족인 우리민족 특유의 국가 명칭으로 맥국이 우리민족의 원류라는 것을 국가 명칭의 근본사상 면에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

2) 춘천 맥국의 전통성.

백제사에서 말갈의 출몰 지역을 보면 강원도 지역에 대한 세력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백제의 서쪽은 바다로서 유일하게 오랫동안 독자적인 중심이 될 수 있는 입지는 동쪽의 강원도 지역이다. 춘천에서 고대 왕도를 찾아내므로 서 말갈의 연합 세력을 통치해온 맹주국이 맥국임을 알 수 있다.

말갈이라는 범칭은 중국 보다 더 오래 되었고 단일 토착 세력이 고구려 신라 백제 보다 더 뿌리가 깊게 오래도록 유지한 국가이다. 농경사회에서는 한번 정착을 하면 생활 터전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농지에 의존해서 살기 때문에 춘천에는 민족의 원류가 자리 잡기 시작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전통을 유지하여 왔던 곳이다.

정복이 되었다 할지라도 독립 위탁 통치 할 수 밖에 없는 지형 구조에서 전통성이 강한 곳이다.
춘천에 맥국이 있었다는 문헌 기록으로는 『삼국사기』(권제35 잡지제4 지리2 삭주 조)에 가탐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하여 “고구려의 동남쪽 예(濊)의 서쪽에 있는 옛날 맥(貊)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이 삭주이다.

선덕왕 6년(637년)에 우수주(牛首州)로 만들어 군주를 두었고 경덕왕이 삭주(朔州)로 개명 하였는데 지금 춘주라 부른다” 춘천은 외부 세력이 쉽게 들어 갈수 없는 험지로서 외부 세력이 장악을 하였다 하드라도 내부 자치 통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외진 곳이다. 섬보다 오히려 왕래가 어려운 지형으로서 오랫동안 자치적인 통치를 해왔던 기간이 다른 곳 보다 길었다고 보는 것이다.

맥국이라는 이름보다 연맹체 인 말갈이라는 범칭으로 오랫동안 사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첩첩히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수많은 산 계곡에 은거하여 살아온 집단으로서 통일적인 큰 조직 보다 유사시에 병력이 집결 하였다 전쟁이 끝나면 분산하여 살수밖에 없는 지형으로서 인류 집단 형성 시기부터 자치 추장 연합 통치 제도가 발달 하여 왔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초기 기록에 많이 나타나는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출몰 지역이 임진강, 북한강, 남한강 중류이며 백제사에는 기원전 온조왕 2년(기원전 17년)에서 의봉 년간(676~679년) 약 700년 까지 기록에서 나오며 신라사에는 지마 이사금 14년(125년)에서 경명왕 5년(921년) 까지 800년 가까이 기록에 나오며 고구려에는 동명성왕 원년(기원전 37년)에서 영순 초년(682년)까지 700년까지 기록에 보인다.

이모두가 맥국과 관련된 말갈로 볼 수는 없지만 말갈이라는 명칭의 집단이 우리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기록에서 구분이 되지 않는 내용은 고대는 산적이나 해적, 들판에는 마적단과 같은 무리가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집단은 구분되지 않기에 말갈의 범칭에 일부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역사에는 기원전 22세기 경에는 숙신으로 서기 236년과 554년에는 읍루 그다음은 물길로서 475년에서 572년 까지 기록에 보이고 있어 이를 대부분 학자들이 말갈의 전신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인 통치 방법인 추장 제도는 그 어느 나라이든 유사한 것으로
맥국의 지방 하부 조직 단위는 말갈의 추장들로 구성되어 분권 통치가 제일 오랫동안 유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