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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양성면 성하리 유적을 왜 마한의 왕도라고 하는가(4회)

- 왕도의 도시 구조 와 건물지의 유적 유물과 주변 발굴에서 입증한 마한 왕도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고대의 왕도는 도시 운영 유지를 위하여 일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왕도가 될 수 없다. 그동안 여러 왕도를 찾아내고 연구한 결과 공통적인 입지와 시설은 다음과 같은 도시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1)고대의 규모가 큰 왕도는 강이나 하천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2)산성과 도성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고 왕궁에서 산성으로 이어지는 퇴로가 조성되어 있다.

(3)지형과 구조에서 적을 막을 수 있는 자연지형과 인위적인 군사시설이 밀집 조성 되어있다.

(4)가까운 위치에는 농경을 할 수 있는 넓은 평야 지대가 있다.

(5)왕도 주변은 장성(長城)이 에워싸고 보호 시설이 여러 겹으로 조성되어 있고 왕도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길목에 군사 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6) 그 당시에 해당하는 유물 분포 면적의 범위가 넓어야 한다.

(7) 땔감의 공급이 원활한 지역이어야 한다.

(8) 왕궁지는 독립된 위치에 보호 시설이 잘되어 있다.

(9) 왕도와 관련된 땅이름의 흔적과 도시 구조에서 연계성이 남아있다.

(10) 왕도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산재되어 있다.

(11) 왕도는 단일성이 아니며 복합적인 도시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12) 고대의 건물은 신분과 관련이 있기에 규모와 구조에서 왕궁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 왕도를 찾아내었을 때는 이보다 더 많은 항목으로 조사 검토를 하지만 찾아내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고려해야 한다.

위의 내용은 발굴을 하지 않고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대부분 발굴만이 전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대한 왕도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유물과 유적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은 방대한 면적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유물은 왕궁 건물지에서 삼한시대의 기와편이 발견 되고 있다.

고대 건물에 기와를 사용 할 수 있는 건물은 종교적인 신전, 왕궁, 관부 세 곳에만 사용되었다. 삼한 시대는 불교가 유입되지 않아 사찰이 없었고 규모와 위치 구조에서 신전, 관부가 아닌 것으로 밝혀져 왕궁임이 입증 된다.

기와 토기의 시대를 비교 할 수 있는 것은 백제 왕궁지 발굴에서 맨 아래 층위에서 출토되는 백제초기의 유물과 같은 기와, 토기 유물이 성하리 건물지 일대에서 대량 발견되고 있다. 또한 왕궁지를 찾아내고 알게 된 것은 인근 반제리에서 고속도로 조성 구간에서 발굴된 환호 군사 유적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 중에서 보다 특이한 군사 유적이 발굴이 된 것이다.

매봉산 중 상단부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와 초기철기 시대의 군사 환호(環濠) 유적과 74기의 대규모 주거지가 가파른 산위에서 발굴 되었다는 것은 시대와 위치 규모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유적이다. 반제리 군사유적은 보다 가까운 곳에 보호해야할 중요한 유적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왕궁지는 길이 150m 폭 80m의 거대한 건물지로서 인근 반제리 매봉산 정상의 군사유적과 연결된 산줄기이며 같은 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것이다. 또한 마한은 토착 세력 집단이기에 양성면, 공도읍, 원곡면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의 밀집도가 높고 많은 무문토기가 출토 되므로 서 마한의 건국의 세력 기반을 입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삼국사기의 기록과 곳곳마다 나타나는 유적과 유물, 왕도의 구조와 거대한 건물지, 지면상 밝히지 못한 여러 가지 입증 자료에서 마한의 왕도임이 밝혀진 것이다.
반제리와 용두리의 주변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 마한의 왕도를 발견 하였다면 하남시의 유적처럼 반발이 심할 수 있어 은폐 가능성이 있지만 주변발굴과 함께 동시에 왕궁지를 찾아내어 더 이상 의문이 될 수 없었다.

마한 왕도는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부가가치 높은 문화 자산으로서 한번 파괴 되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기에 관심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혼이 베어 있고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 자산이기에 애향심으로는 결코 소흘이 하거나 방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고대의 왕도는 지상의 신(神)이 사는 곳으로 함축된 사상이 내재되어 있고 보다 많은 관련 유적이 산재되어 있기에 파괴되기 전에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작은 고분의 유적은 발굴을 해야 만이 알 수 있지만 거대한 도시 구조와 유적을 찾아내는 것은 현장학술 조사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잘못된 인식으로는 발굴만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유물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유동성이 많기에 낮은 안목의 발상으로 함정이 될 수 있다. 지역 신문을 통하여 간략하나마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신 안성 신문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사진 설명 : 왕도를 둘러싸고 있는 한천)(마한원고 사진참조)

사단법인 백제 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