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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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에서 본 마한은 어떤 나라인가. (제2회 연재)

- 진국 마한은 78개의 소국을 거느린 맹주국
- 고조선시대 한반도의 토착왕국은 진국(辰國) 마한(馬韓) 이였다

안성에서 발견된 마한 왕도에 대한 문헌 기록은 어떠한가 중국 측의 사서에 의하면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의 연맹체로서 나라 이름과 함께 생활상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삼한을 모두 마한이 다스린 것으로 통합 전채의 나라 이름은 진(辰)국이라 하였다. 자세한 내용으로는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韓)전에는 “진왕(辰王)은 월지국(月支國)을 통치한다” 기록이 되어 있고 『후한서 한전』에는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전채의 국토가 사방 4천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이다. 마한이 한족(韓族)중에서 제일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으로 삼아 목지국(目支國)에 도읍을 하여 전채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립을 하는데 , 삼한의 제국 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위의 내용에서 『삼국지』는 월지국이라 하였고 『후한서』에는 목지국이라 기록되었는데 자료의 신뢰도와 월지국이라는 기록이 두 곳에 나타나는 『삼국지』의 월지국이 신뢰성이 높은 기록이 되고 있다.(“月”자가 “目”자로 오기 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 주류이다)

월지국을 진왕(辰王)이 통치하였고, 또한 진왕이 삼한 전채를 다스린 막강한 세력권으로 기록된 국가이다. 또한 마한 왕을 진왕이라고 하여 삼한 이전부터 존재 하였던 토착적인 진국(辰國)의 전통을 이어온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신채호 선생이나 북한의 연구에 의하면 삼한 분립 이전의 압록강 이남은 모두 진국이 다스렸으며 중심지는 곧 마한의 월지국이라는 내용의 삼국지 동이전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이를 입증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記)의 기록에서는 백제 온조왕(溫祚王)이 마한 왕에게 천도와 강역을 알리고, 전쟁 포로와 사냥한 신록을 바치는 관계로서 백제 초기는 마한의 지배를 받는 속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본기(新羅本記)의 기록에는 신라 사신이 마한에 오자 마한 왕은 분노하여 말하기를 “진한과 변한은 속국인데 근래에 와서는 공물을 바치지 않아 예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신라의 사신을 죽이려고 하자 이를 만류 하여 되돌려 보냈다는 기록에서도 마한은 삼한의 맹주국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마한 왕도의 위치를 천안의 직산 또는 익산이나 영산강 유역으로 보아 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에서 본다면 백제와 마한과의 거리를 알 수 있는 것은 온조왕 24년(서기6년) “왕이 웅천책을 설치하니 마한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책망하기를 「왕이 처음 강을 건너 왔을 때는 발붙일 곳이 없으므로 내가 동북 일백리 땅을 갈라주어 편히 살게 하고」하면서 책망을 하는 기록과 온조왕 26년에는 사냥을 한다고 말하고 왕은 군사를 내어 마한을 기습 공격하여 멸망 시켰다는 기록이다.

위와 같은 기록에서 마한과 백제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지금까지 마한과 관련된 연구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국지』한(韓)전에는 『위략(魏略)』을 인용한 글에는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속하였으나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천호의 백성들과 함께 동쪽의 진국(辰國)으로 갔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고조선이 요동에 있을 때에 역계경이라는 조선의 관리가 우거왕에게 자신의 건의 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진국으로 망명을 갔다는 것으로 그 당시는 한(漢) 나라와 고조선, 진국 등이 서로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망명을 갈 정도 였다면 힘이 약한 국가가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망명은 힘이 약하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당시 고조선은 한(漢)나라와 1년간 치열하게 싸운 국가이며 고조선에서 진국을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강대한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삼한의 연맹체가 진국이며 진국의 중심이 마한 의 왕도이며 마한의 왕도가 삼국사기의 내용대로 백제의 왕도에서 일 백리 거리에 속하는 안성에서 왕궁지와 함께 고대 도시가 발견이 된 것이다.


<사단법인> 백제 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사진 설명 : 마한 왕도에서 발견된 기와편 (마한원고 사진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