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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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한 원고 사진자료
  맥국과 백제 사진자료
  백제왕도 유적 사진자료


 

- 본 내용은 안성 신문에 발표한 내용으로서 앞으로 마한과
  관련된 유적을 조사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왕도라
  는것을 입증하 는 내용 입니다.

안성 마한(馬韓) 왕도의 발굴기(제1회)

안성에서 발견된 마한 왕도는 어떤 국가인가. ?백제 초기 왕도 연구에서 마한 왕도의 실체를 가늠하게 되었다. ?마한 왕이 백제 온조왕을 꾸짓기를 “일백리 지역에 땅을 주었는데· ”라는 기록과 같은 거리의 안성에서 마한의 왕도가 발견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명이 대한이라는 명칭도 삼한을 근거로 하였고 특히 마한은 한반도 전채를 다스렸다는 거대한 역사의 원류이자 고조선 역사와 통하는 오래된 왕도이다. 마한의 왕도를 잊어 버렸다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큰 맥의 줄기를 잊어버린 것과 같다.

1992년에 백제초기 2곳의 왕도를 찾아내고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의문이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백제와 함께 존재 하였던 마한의 왕도는 어느 곳일까 지금까지 역사의 수수께끼가 되어 왔었다.
백제 신라 모두 초기에는 마한의 지배를 받았던 78개 소국의 맹주국 이 였다. 마한의 통제를 받아온 백제 초기 였고 중국의 사서에 마한에 대한 기록이 우리 사서 보다 많을 만큼 대외적으로도 잘 알려진 국가 였다.

지금까지 학설의 주류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왜정 시대부터 정설처럼 되어 있고 또한 삼국 초기는 부족국가라 하여 원삼국 시대라는 학설이 고착되어 있다.
이러한 학설에서 마한은 보잘 것 없는 국가라는 개념에 유적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감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백제 초기의 왕도를 찾아내고 보니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정확성이 있다는 것을 우선 알게 되었고 또한 마한이 결코 작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도 점차 가늠하게 되었다. 삼한의 역사 연구가 앞서있는 북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마한, 진한, 변한의 전채를 다스린 국가가 진국(辰國)이며 삼한은 행정 명칭으로 보면서 마한이 진국의 주체가 되어 삼한 전체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 중국에는 한(漢)나라 라는 거대한 국가가 있었고 또한 한나라와 1년간 싸운 막강한 고조선이 요동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고조선에서 한반도에 있는 진국(辰國)으로 대단위 정치적인 망명객이 있었다는 기록에서도 진국의 실체가 결코 작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중국의 문헌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고조선과 함께 있었던 진국 마한의 왕도는 기원전 국가이기에 대부분 왜소하거나 위치도 분명하지 않기에 찾는다는 것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한 전채를 다스린 국가 이자 중국 지역의 세력을 견제할 만큼 강력한 힘도 있었다면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교차 하고 있었다. 못 찾는다 할지라도 어떻게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과정도 역사 기록에서는 중요하다고 느꼈다.

마한의 왕도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민족은 끝없이 멍에를 지고 갈 수밖에 없고 시급한 것은 개발관계로 한번 유실되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 왜곡을 당하고 있는 큰 문제 중에서도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 까지 평양에 중국의 군현인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여 420년간 한반도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바로 마한이 존재 하였던 시대로서 원삼국 학설과 함께 삼한 시대는 부족국가이며 한사군에 종속 되어 오랫동안 왜소함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에는 장기간 존재한 한사군의 군현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고 낙랑국과 대방국이라는 국가이름이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바르게 규명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증이 될 수 있는 유적이 우선 확보 되어야 진위를 가릴 수 있다. 특히 왕도는 그 당시 국력과 모든 함축된 역사자료가 결집되어 있고 특히 마한의 왕도는 민족사를 바르게 밝혀줄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거대한 왕도 유적이다.

그 중요성은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혼이 베어 있는 민족의 유산이다.

<사> 백제 문화 연구회 회장 한종섭 글

(사진 설명 : 안성시 양성면 성하리 의 마한 왕궁지) 마한원고 사진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