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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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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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 맺 음 말 -

보고자들은 그동안 전방후원분이 어떤 이유로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조성되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알기 위해서 오랜 연구를 하였으며 또한 백제 한성시대에 일본과의 관계에서 금성분이 존재 할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었다. 이번 사회단체와 문화재청과의 분쟁 및 조사과정에서 교과서와 같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유적을 보존하거나 진위를 밝힐수 있는 유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단체가 강하게 주장을 하게된 것은 민족의 긍지를 되찾을수 있는 중대한 유적이기에 한 두개의 유적에 손상이 있다 할지라도 나머지의 수많은 거대한 금성분들을 구제할수 있기에 불가피하게 방관만 하고 있을수 없었던 것이다. 암사동 유적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미 발굴까지 하여 유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 것이며 도로 예정지로 멸실 직전에 사회단체가 모든 것을 걸고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미 도로 개설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나머지 남은 부분도 도로 확장 공사에 의해 소멸될 것이기에 더욱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또한 선사유적과 가까운 위치에 있기에 돈으로 환산할수 없을 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전방후원분이라 하여 일본 고유의 묘제로 보면서 백제와의 관련설을 부정해 왔으며 무엇보다 국내에서 백제 유적이 발굴되어도 은폐하여 왔던 문제점에 의하여 사회단체로 하여금 민족적인 감정을 유발하게 하였던 것이다. 금성분의 성격이 호국적인 묘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유자재로 운행하는 금성의 성격에서 물고기와 같이 물이 있어야 살아있는 금성이 라는 뜻으로 주위에 물을 채웠던 것이다.

강동구나 하남시에서 발견되고 있는 금성분이 하천변 습지에 조성한 것도 입지적인 여건과 부합이 되는 위치임을 알수 있다. 특히 금성분과 같은 형태는 자연적으로 조성될수 없는 형상이며 위치가 마을의 중앙으로서 인근에는 볕우물 이라는 고대 우물과 가까운 곳으로 항상 주위에 물을 채울수 있는 수원이 풍부한 곳이다.

또한 민둥산과 같은 거대한 산이 금성분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8각을 조성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발생의 원류를 알면 금성분의 구조를 예측할수 있으며 고대인들은 금성의 한 주기가 8년이라는 것을 적용하여, 금성을 숫자 8과 결부지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표시로서 8각의 도형을 생각하였고 탑, 우물, 신전, 신앙조형물 등 많은 부분에 8각을 적용해 왔으며 보수적인 고분에도 8각을 적용하면서 금성이 운행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주위에는 물을 채우고 꼬리까지 조성한 것을 본고에서는 금성분이라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최대 전방후원분인 인덕과 응신천왕 능 옆에 ‘하치반신사(八幡神社)’가 있다는 것도 이를 입증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에 호국적인 행사로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모이는 팔관회 행사의 기원과 이름이 금성에서 파생된 호국적인 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세계 최대의 금성분이 발견되면서 지금까지 몽촌과 풍납토성을 백제의 왕도라는 주장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풍납토성 과 황산 고분 1기를 비교하여도 크기의 차이가 비등(比等)함으로 더 이상 민족사를 축소하려고 해서도 안될 것이다.

방대한 백제의 500년 왕도를 별것 아닌 것으로 은폐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더 이상 수많은 유적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존 계획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장기간 식민사학의 체제에서 쉽게 변할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있지만 이 땅에 몸담아 살고 있기에 지켜야할 최소한의 기본은 있을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땅이기에 선조가 물려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엄청난 연구비를 투입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응이 가능한 유적은 방치, 소멸, 은폐하려고 하는 일은 근절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사가 우리 세대에 파괴가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 하며, 문화재는 우리세대에게만 해당되는 유산만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세대는 선조와 후손을 연결해 주는 임무가 있으며 특히 백제 한성시대의 역사는 일본과 중국의 영토를 다스린 국가이기에 그 어느 역사보다 긍지를 가질수 있는 민족의 이력서이다.
우리 주변에는 열강들의 강한 힘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민족이 정신을 가다듬고 살아갈 길은 자부심으로 강한 정신력을 키워 나가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남한산성과 하남시 일대에서 거대한 유적이 발견되면 모두 고구려나 신라의 유적으로 오도(誤導)를 해왔으며 백제의 500년 민족사는 몽촌과 풍납토성에 묶어 두면서 백제 초기는 부족국가인 원삼국 시대라는 연표를 걸고 있어 한사군 지배설과 임나일본부 학설의 틈을 마련해 주고 있다.

또한 한성백제의 거대한 왕도가 발견되어도 묵살하고 심지어 영산강 일대는 5세기까지 백제와 관련이 없는 지역으로 주장해 왔던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있는 그대로를 왜 숨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하남시 일대를 오랫동안 발굴한 사람들 대부분이 백제 왕도라는 발굴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없을 만큼 심각한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 국민이 잘못된 것을 탓하면서 그대로 있을수 없고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게 된 것은 하남시와 강동구 일대는 현재 개발을 앞두고 있으며 강일동 지역은 보상이 끝나고 개발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암사동 지역은 도로 확장 공사에 포함된 곳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또한 고덕천과 망월천 사이의 개발은 고분과 조화를 이루어 개발 계획이 이루어져야 하며 민둥산과 황산도 보존을 위한 개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백제 시조 온조 왕능을 비롯한 새로이 발견된 금성분을 일본과 중국, 북한의 학자들까지 공동으로 신뢰성이 입증되도록 발굴하여 더 이상 민족사를 왜곡 은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민족 문화유산 보호에 앞장서서 민족 앞에 떳떳하게 나설수 있는 국민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바라며 이 논문은 개인의 글이 아니라 강동구 구청장님을 비롯한 문화원장님과 관계 직원들의 애향심과 관심에서 이루어진 논문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사회단체의 수많은 분들의 성원과 협조에서 이루어진 내용이기에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5. 12. .


<사단 법인> 백제 문화 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