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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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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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9. 백제 한성지역의 세계 최대규모의 고분과 고분군

황산과 민둥산을 조사한 결과 산 전체를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발견되고 꼬리 부분도 인위적으로 삭토(削土)나 보축(補築)을 한 것으로 엄청난 공력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또 산에서 나지 않는 하천이나 평지에서 운반해온 흙이 산정상의 표면에 산재되어 있어 인위적인 조성이 확인되고 있다. 그 중에서 민둥산 정상에는 실개천에서 볼수 있는 마모된 작은 자갈이 섞여 있는 모래흙이 두껍게 복토되어 있다.

이러한 모래흙은 지금은 모두 주변이 논밭으로 변하여 찾아 볼수 없는 흙으로 고대 주변에 실개천이 흐를 때에 채취한 하천 모래흙으로 무덤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이곳은 벌판으로서 이성산성과 구산토성(龜山土城)으로 연결되는 위치이기에 왕도로 진입해 들어오는 고대 군사시설이 있어야 할 곳이지만 그러한 시설이 없다는 점에서도 고분의 형상으로 조성된 산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또한 산 이름도 고분의 조성 흔적을 나타내는 민둥산의 뜻은 나무가 한동안 없고 형태가 민듯하여 이러한 산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보여 지며 거칠“황 (荒)”자를 표현하는 황산이라는 지명도 산의 표면을 다듬기 위하여 삭토한 관계로 암반이 돌출된 부분이 많아 거칠다는 산 이름으로 불리어 지게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내용 이외에 주변이 8각으로 조성된 흔적과 단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 부분적이나마 남아 있고 주변에 물이 흐르는 하천과 주구(周溝) 시설 등에서 금성분의 형태를 알수 있다.
보다 자세한 조사와 연구는 본문의 지면상 생략하며 거대 금성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조사 연구된 유적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무덤과 비교를 한다면 이집트의 쿠푸왕 무덤 피라미드가 한변이 230.4m 높이 146.6m이며 중국의 진시황의 무덤이 밑변 350m 높이 76m이며 현재까지 제일 큰 무덤으로 알려진 것은 일본의 인덕천황능으로서 전체의 길이가 486m이며 원부 직경이 245m 방형의 폭이 305m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백제계의 인덕천황이 세계에서 제일 큰 능묘라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문화를 전수받은 일본에서 이러한 거대한 금성분이 있다는 것은 고분 문화를 전해준 백제 500년 왕도인 한성지역에서 이러한 무덤이 발견되어야 만이 설명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금성분 발생의 기본이 고도로 발달한 천문학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발생할수 있는 묘제가 아니며 뿌리 깊은 천문사상의 배경에서 오랫동안 다른 유사한 면으로도 시도가 되어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보수성이 강한 묘제에까지 적용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백제를 “구다라”라고 칭하는 것은 우리말 “큰나라”이며 그들이 큰나라 라고 말하는 것에는 모든 면에서 거대한 국가라는 의미가 있기에 고분만이 예외로 볼수 없는 것이다.
고대의 능묘는 조상신의 제사처로서 신앙적인 면과 국력을 상징하고 국가에 대한 위세의 표상으로 조성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의 백제 문화권에서 뚜렷하게 거대한 금성분이 발견되지 않고 있기에 지금까지 일본의 고유 묘제로 주장을 해왔던 것이다. 또한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어 발굴된 금성분이 일본과 관련된 것으로 주장하며 일본 학자들 대부분은 한반도 남부 지역을 삼국초기에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성시대에 거대한 금성분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일본고유 묘제이거나 아니면 일본에서 발달한 무덤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학설도 인정을 해야 할 단계에 놓여 있다. 이번에 발견된 금성분은 삼국시대에 이미 세계에서 제일 큰 고분을 2기나 조성할 정도의 국력을 예측 할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금성분은 중국의 동북공정 대응에 직접적인 자료가 되며 한일 양국간에 예민한 임나일본부설도 잠재울수 있다. 일본에서 규모가 제일 큰 인덕천황(仁德天皇)의 능과 응신천황(應神天皇)으로 보는 능의 축조시기가 5세기 중엽 이후 5세기 말엽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기는 백제와 교류가 활발한 한성시대(기원전 18년?서기 475년)로서 일본의 거대한 고분의 발생은 5세기 말로서 세계 최대 규모의 금성분인 인덕천왕 능의 축조 시기는 백제와 문화교류가 활발한 시대로서 그 어느때 보다 백제와 밀접한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특히 금성분은 기하학적인 복잡한 모양에서 쉽게 발생할수 있는 무덤으로 볼수 없다.

뿌리가 깊고 발생 기간이 길고 공감대가 있어야만 기하학적인 모양의 거대한 고분을 조성할수 있는 것이다.

GPS 를 사용한 고덕천과 망월천 사이의 금성분

황산 금성분 전장 약 770m 민둥산 금성분 전장 약 680m
능골 1호분 ~ 약 220m 능골 2호분 ~ 약 370m
능골 3호분 ~ 약 270m 능골 4호분 ~ 약 190m

상기 이외에도 전장이 100m가 넘는 것이 몇기 더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원래 거대분만 총 십여개 있었던 것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민둥산과 황산은 그 어느 왕능보다 세계에서 제일 큰 능이라는 점과 현재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300~400m가 되는 것이 4기 정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곳은 몇 개만의 큰 고분이 아니며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군이 발견된 것이다.

[그림설명] 민둥산 고분 주위를 살펴본 결과 주구(周溝) 시설이 8각으로 되어 있는 형태가 일부 남아 있으며 주위를 8각으로 조성한 유적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8각 조형물이 백제초기에 성행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