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연구회의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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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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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고분>


백제 금성분(金星墳) 연구 (일명 : 전방후원분)


<사단법인>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한 종 섭 글

2) 토기 편과 철편
흑색 무문 연질토기편이 출토된 배총은 남북 방향으로 남쪽은 도로 굴착으로 인해 삭토되어 유실된 부분에서 발견된 조각으로서 1개체 분량에 속하는 작은 소호(小壺)의 토기편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와편과 철편이 발견 되었는데 아래 그림과 같으며 <그림3>의 철편은 단조에 의하여 만든 사각의 송곳과 같으며 <그림4>는 주물에 의한 철편으로 깨어진 솥의 조각편의 일종으로 보여질 만큼 불분명한 쇠 조각이다.

<그림3>의 철편은 연장으로 사용이 가능하나 <그림4>는 묘를 쓰고 난 이후에 외부에서 투입된 것이 아닌가 생각들만큼 앙금이 있는 바닥 층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10cm 정도 떠있는 위치에서 발견된 철 조각이다.

한편으로 그 당시 화폐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망자(亡者)에게 넣어준 철편으로도 볼수 있다. 유물이 발견된 위치는 U자형으로 풍화 암반이 파여져 있고 북쪽에는 얇은 돌을 2단으로 막은 것이 나타나 시신이 있는 주곽(主槨)의 토광이 있는 곳으로 보여지며 인위적으로 쌓은 토층이 겹겹이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더 이상 확인하지 않고 추후 발굴하여 토광묘임을 알수있게 하는 유적이기에 있는 그대로 덮고 계획적인 발굴 자료로서 보존하기로 하였다.

3) 석수(石獸) 머리편
석재는 강이나 하천에서 표면이 마모된 돌을 타격하여 조각한 석물로서 주둥이와 머리, 귀 등을 명확히 알수 있는 조각품으로 묘를 파내는 과정에서 출토된 석물이다. 무령왕능 내부에도 무덤을 지키는 석수를 배치한 것처럼 토광묘를 조성하면서 묘의 앞을 지키는 짐승을 배치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맥이(貊耳)로서 동물을 함께 묻은 것으로 보여진다.

맥이란 우리말 “막이”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 지는데 이것은 옛 마을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거나 마을 입구에 성황당을 조성한 흔적에서 알수 있다. 이러한 곳을 “수살맥이”라 칭하고 있다. 이는 좋지 않을 재앙을 막는 것으로 외부에서 볼수 없도록 나무를 심어서 보호 차단하는 나무의 숲이 많은 곳이다.

또한 흔히 사용하는 말로서 “액막이” 또는 “액맥이”라 하는 것도 나쁜 재앙의 액운을 막아내는 것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예견할수 없는 불행을 막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온 상징물이다. 병을 막아내고자 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약사불(藥師佛)이 따로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덤도 산 자(者)와 같이 보호해줄 사람과 동물이 있어야 만이 영혼이 해를 입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고대인들로서는 이러한 조형물을 조성하여 망자를 지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강동구의 학술조사(2002~2005)에서 이러한 맥이를 조성한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그 형태는 다양한 것으로 맥이는 총칭의 명칭이며 맥이의 종류는 귀맥(龜貊), 호맥(虎貊), 용맥(龍貊), 봉조맥(鳳鳥貊), 천마맥(天馬貊) 등이 성벽의 입구에 조성된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사신도(四神圖)에서 위치마다 지키는 맥의 종류가 다르듯이 동서남북의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맥이를 배치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우주의 원기가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것으로 위치마다 보호맥이(保護貊耳)를 달리하여 상상의 동물을 연상하여 조성 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4) 일본의 고마이누(박견 : ?犬)의 원류가 발견되다.
일본의 신사 앞에 언듯 보면 사자나 해태 또는 귀신을 쫓아낸다는 삽살이 비슷한 형상의 고마이누라는 개를 조각한 것을 보게 된다. 고마는 우리말 “검”에서 나온 것으로 ‘성스럽다’ 또는 ‘신성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어원이다.

개는 사람이 살아 있을때 항상 주인 곁에서 주인을 보호하는 것으로서 밤이면 집을 지키고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영리한 충견이다.

2000년도에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동한시대(A.D. 25~220)의 유물이 출토되는 몽골지역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개를 순장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여러 조사 기록에서 신석기시대부터 동북아시아에서 개를 순장(殉葬) 시키는 매장법이 있었다는 것이며 순장이 사라지면서 개 모양의 조각상을 매장한 것으로 보여 진다.

죽어서도 주인을 지켜 달라는 염원이 있었던 것이며 개의 조상은 늑대로서 용맹스러운 늑대개를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것이 일본의 신사(神社) 앞에 세운 고마이누로 변화된 것으로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또 신사는 무덤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번 석수 조각은 고대 조각의 원류로서도 중요한 연구 자료이며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야할 고대 조각 미술품이다.

5) 원분(圓墳) 정상 부분에 검은색 흙을 채운 이유
암사동 금성분 원분의 토광묘 위에는 멀리서 운반해온 검은색의 흙으로 채운 것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흙은 논이나 하천에서 볼수있는 검은색의 개흙으로 시신을 묻을때 왜 주변에 있는 산의 붉은색 황토흙으로 묻지 않고 멀리서 흙을 운반해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원분 아래의 독립되어 나타나는 배총의 토광묘는 붉은색의 흙이 어느 정도 섞여 있으나 원분의 상단 구역에는 인근에 있는 붉은색의 흙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고분이 다인장의 토광묘로 지역 수장을 묻고 난 뒤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 또 다른 수장이 죽게 되어 묻을 때 매장된 위치와 매장되지 않은 위치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서 검은색의 흙을 운반해 와 토광을 채운 지혜이다.

구분이 되는 것은 표면에는 어느정도 낙엽 또는 수목이 썩어서 검게 나타나는 부분이 있으나 그 깊이는 얕으며 깊게 구덩이를 파서 검고 교란된 개흙을 채운 부분은 토광에 속하는 무덤이다.
또한 멀리서 운반해온 흙과 해당 지역 흙과의 차이는 토질 자체가 다르기에 쉽게 구분이 된다.

만약 같은 색의 흙으로 토광을 채웠을 경우 구분이 되지 않아 시신을 묻은 자리를 다시 파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묘지의 흙과 전혀 다른 검은색의 흙을 운반해 와서 토광을 채웠던 것이다. 이렇게 다른 흙으로 매장을 하였기에 일시에 함께 묻은 묘가 아니고 점차적으로 매장한 다인장 무덤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또한 검은색의 흙이라 할지라도 모두 토질과 색의 차이가 각각 틀리는 것도 이를 입증하며 대대로 그 지역을 통치하는 수장들을 묻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근래까지 이어져와 당산제(堂山祭)를 지내왔던 것이다.